
픽사(Pixar)의 애니메이션 소울은 2020년 개봉 당시 전 세계에서 약 1억 2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성인 관객들의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습니다. 저는 이 숫자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그 몇 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. 지쳐서 그냥 틀었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제 삶을 되돌아보게 된 영화였습니다.
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공허하다면, 이 영화가 말을 걸어옵니다
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꽤 지쳐 있는 시기였습니다.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아침에 눈 뜨면 출근 준비하고, 정신없이 일하고, 퇴근하면 그대로 쓰러지는 루틴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.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버스 창밖으로 노을이 보였습니다. 예전이었으면 사진이라도 찍었을 텐데, 그날은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었습니다. '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여유롭게 하늘을 봤지?'라는 생각이 들었고, 집에 돌아온 뒤에도 마음이 이상하게 허전했습니다.
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가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. 재즈 뮤지션을 꿈꾸며 살아왔지만, 정작 꿈에 가까워지는 순간에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있었습니다. 그 장면을 보면서 제 모습이 겹쳐 보여서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.
영화는 이 감정을 '번아웃 증후군(Burnout Syndrome)'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. 번아웃 증후군이란 특정 목표를 향해 과도하게 에너지를 쏟은 끝에 심리적·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를 말합니다. 세계보건기구(WHO)는 2019년 국제질병분류(ICD-11)에 번아웃을 공식 직업 관련 증상으로 등재했습니다. 여기서 ICD-11이란 WHO가 전 세계 질병과 건강 문제를 분류하는 국제 표준 체계를 말합니다. 번아웃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실질적인 건강 문제로 인정받은 것입니다(출처: 세계보건기구(WHO)).
소울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. 조가 평생 이루려 했던 목표를 거의 손에 쥐었음에도 공허함을 느끼는 장면은, 목표 달성 이후의 감정적 공백인 '성취 후 허탈감(Post-Achievement Letdown)'을 정확하게 묘사합니다. 성취 후 허탈감이란 오랫동안 달려온 목표를 이루고 난 직후 동기와 에너지가 갑자기 사라지는 심리 현상입니다.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, 취업하고 나서 첫 달에 느꼈던 그 허전함이 정확히 이 개념과 맞닿아 있었습니다.
소울이 보내는 메시지는 거창하지 않습니다. 지금 이 순간의 사소한 감각들, 바람의 온도, 좋아하는 음악, 따뜻한 음식 한 끼가 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힘일 수 있다고 조용히 말해줍니다. 영화를 보는 내내 제 버스 창밖 노을 기억이 자꾸 떠올랐습니다.

픽사 애니메이션이 어른을 더 울리는 이유, 소울의 연출과 22라는 캐릭터
픽사의 작품들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서사 구조(Narrative Structure) 때문입니다.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, 즉 사건의 배치와 감정 흐름을 설계하는 틀을 말합니다. 소울은 이 구조에서 어린이 관객이 아닌 성인 관객의 내면을 정조준합니다. 아이들이 영상의 색감과 캐릭터에 반응한다면, 어른들은 조 가드너의 불안과 22의 혼란에서 자기 자신을 봅니다.
22라는 캐릭터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. 태어나기도 전의 영혼인 22는 삶에 흥미가 없고, 왜 살아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. 저는 이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 '이게 나랑 많이 닮았다'는 생각이 들어서 좀 불편하기도 했습니다.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왜 사는지 모르겠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거든요.
22가 처음으로 피자를 먹고, 바람을 맞고, 길을 걷는 장면들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고 강렬한 순간들입니다.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 자체가 충분할 수 있다는 걸, 대사 한 줄 없이 보여줍니다. 제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. 이렇게 단순한 장면들이 영화 전체에서 제일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.
영화의 음악도 이 감정선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. 재즈(Jazz) 음악 특유의 즉흥성과 자유로운 화성 구조가 주인공의 감정 변화와 정확하게 맞물립니다. 재즈에서 즉흥 연주를 의미하는 임프로비제이션(Improvisation)은 악보 없이 순간의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. 여기서 임프로비제이션이란 정해진 틀 없이 연주자가 그 순간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기법입니다. 소울의 OST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수상했고, 재즈와 일렉트로닉 음악을 결합한 구성으로 영화 전체의 몰입감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(출처: 아카데미 공식 사이트).
소울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했던 장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.
- 조가 꿈의 공연을 앞두고도 공허함을 느끼는 장면
- 22가 처음으로 피자 한 조각을 먹고 감동받는 장면
- 조가 지구로 돌아가 평범한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마지막 장면
세 장면 모두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. 그냥 일상입니다. 그런데 그 일상을 이렇게 소중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게, 제 경험상 이건 픽사만의 연출력이 아닐까 싶습니다.
요즘 마음이 자꾸 공허하거나 이유 없이 피곤함이 쌓인다면,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 건지 영화 한 편이 의외의 실마리를 줄 수 있습니다. 소울은 해결책을 주는 영화가 아닙니다. 다만 잠깐 멈춰서 지금 살아있는 이 하루를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.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그날 저녁에 오랜만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아무것도 안 하며 앉아 있었습니다. 그게 오히려 오래만에 제대로 쉰 밤이었습니다. 이 영화가 그런 밤 하나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,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됩니다.
참고: 출처 : 디즈니 코리아, 네이버 영화 참고 및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했습니다.